1894년 11월의 시연
1894년 11월, 인도 캘커타 타운홀의 한 강당에서 흔치 않은 시연이 있었다. 한 인도 과학자가 작은 장치를 작동시키자, 23미터 떨어진 곳의 종이가 떨어졌고, 그 옆의 화약이 점화됐다. 두 사물 사이에는 어떤 선도 없었다. 세계 최초로 공개된 무선 신호 시연이었다.
이 시연은 영국령 인도 부총독을 비롯한 고위 인사들 앞에서 이루어졌고, 당시 캘커타의 영국계와 인도계 신문 모두 그 사실을 보도했다. 그러나 역사책은 무선 통신의 발명을 1896년 마르코니로 기록한다. 마르코니의 시연보다 2년 앞선 이 사건은 어떻게 잊혔을까. 이 글은 자가디시 찬드라 보스라는 한 과학자의 1894년부터 2026년까지의 130년을 정리한다.

보스라는 사람
이 시연을 한 사람은 자가디시 찬드라 보스(Jagadish Chandra Bose). 1858년 영국령 인도(현 방글라데시 지역) 출생.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뒤 캘커타 프레지던시 칼리지의 물리학 교수로 일하던 36세 청년이었다.
그의 위치는 독특했다. 영국에서 교육받은 인도인 과학자였지만, 식민지 시기 인도인이라는 이유로 영국 동료들보다 절반 수준의 봉급을 받았다. 그는 봉급 인상을 요구하는 대신 봉급 자체를 거부했다. 3년 동안 무급으로 일하며 그가 모은 연구비로 무선 실험을 진행했다. 1894년의 시연은 그 무급 연구의 첫 공개 결과였고, 동시에 식민지 차별에 대한 그의 무언의 항의였다.
마이크로파라는 새 도구
보스의 시연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사용한 전파의 종류였다. 그는 60GHz 부근의 마이크로파를 사용했는데, 이는 마르코니가 1896년에 사용한 장파보다 훨씬 짧은 파장이었다. 마이크로파는 그 시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었고, 보스는 그 영역에서 동작하는 송신기와 수신기를 처음부터 직접 설계했다.
그의 수신기는 ‘코히어러(coherer)‘라는 장치였다. 작은 유리관 안에 금속 가루를 채운 형태로, 전파가 도달하면 가루가 일시적으로 결합해 전류가 흐르게 되는 원리다. 보스는 이 코히어러를 1899년 미국에서 ‘아이언-머큐리-아이언 코히어러’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받았다. 100년 뒤 5G 시대에 60GHz 마이크로파가 핵심 주파수가 된 것을 생각하면, 보스의 1894년 선택은 시대를 한 세기 앞선 것이었다.

마르코니의 그림자
역사책은 1896년 굴리엘모 마르코니의 시연을 무선 통신의 출발로 기록한다. 마르코니는 영국에서 특허를 출원했고, 190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의 회사는 20세기 초 글로벌 무선 통신 시장을 사실상 독점했고, 마르코니라는 이름은 무선 통신의 동의어가 됐다.
그러나 마르코니의 1896년 시연은 보스의 1894년 시연보다 2년 늦은 것이며, 마르코니가 사용한 코히어러의 일부 원리는 보스가 1895년 학회지에 발표한 논문과 유사하다는 분석이 후대 과학사 연구로 밝혀졌다. 마르코니가 보스의 연구를 직접 참조했는지에 대해서는 학계 의견이 갈리지만, 두 사람의 핵심 부품이 같은 원리로 작동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과학사가들은 마르코니가 “발명가”라기보다는 “상업화에 성공한 사업가”였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특허, 자본, 영국 정부의 지원이라는 세 가지 자원을 모두 활용했고, 보스는 그 중 어느 것도 활용하지 않았다. 결과는 한 사람은 역사책에, 다른 한 사람은 각주로 축소된 것이다.

특허를 포기한 이유
보스가 역사에 자기 이름을 새기지 못한 결정적 이유는 특허 포기다. 1899년 그는 미국에서 마이크로파 수신기의 특허를 받았지만, 이후 추가 발명에 대한 특허는 거부했다.
그의 신념은 명확했다. “과학은 인류의 공유 자산이 되어야 한다.” 그는 영국 동료 과학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평생 그 신념을 지켰다. 그가 만든 모든 추가 발명품의 설계도는 학회지에 공개됐고, 누구든 그 설계로 장치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상업적 무선 통신 시장은 마르코니의 것이 됐다. 보스의 신념은 100년 뒤 오픈소스 운동의 정신과 정확히 닿아 있지만, 100년 전에는 그것이 시장에서 자기 이름을 지우는 선택이었다. 두 가지 관점이 가능하다. 한쪽에서 보면 그는 명예와 부를 잃은 사람이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 그는 과학자로서의 신념을 지킨 사람이다.

식물 생체 신호의 발견
보스는 무선 연구를 그만두고 새 영역으로 옮겨갔다. 식물의 생체 신호 연구다. 그는 식물이 자극에 반응할 때 미세한 전기 신호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1900년대 초에 세계 최초로 측정했다.
그가 발명한 크레스코그래프(Crescograph)는 식물의 미세 성장을 만 배 확대해 보여주는 장치였다. 식물이 빛, 온도, 화학물질에 반응할 때 잎의 미세한 떨림과 줄기의 미세한 굽힘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처음으로 정량 측정했다. 이 연구는 식물에도 일종의 신경계 비슷한 시스템이 있을 가능성을 시사했고, 100년 뒤 식물 행동학(plant neurobiology)이라는 분야의 출발점이 됐다.
1917년 그는 영국에서 기사 작위(Sir)를 받았다. 식민지 시기 인도인 과학자가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매우 드문 사례였다.

잊혀진 100년
보스는 1937년 세상을 떠났다. 인도 독립 전 식민지 시기였고, 영국 중심의 과학사 서술 안에서 그의 이름은 점차 옅어졌다. 무선 통신사에서 그의 자리는 마르코니의 각주 정도로 축소됐고, 식물 생물학에서도 그의 선구적 측정은 후대 연구자들에게 가려졌다.
과학사 서술의 권력은 단순한 사실 기록이 아니다. 어떤 사실이 “중심”이 되고 어떤 사실이 “각주”가 되는지는 그 시대의 문화적, 정치적 권력에 의해 결정된다. 식민지 시기의 과학사는 영국 중심이었고, 영국에서 활동한 영국인 과학자가 자연스럽게 중심에 놓였다. 보스는 영국에서 교육받았지만 인도에서 활동한 인도인 과학자였고, 그 위치 자체가 그를 중심에서 밀어내는 힘으로 작용했다.
그가 100년 가까이 본격적인 재평가를 받지 못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과학사 서술의 구조적 특성이었다.

2026년의 재평가
21세기 들어 보스의 재평가는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 2009년 IEEE(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는 보스를 ‘무선 통신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공식 인정했고, 그의 1895년 캘커타 논문이 후대 마이크로파 통신 연구에 영향을 준 것을 학회 차원에서 명시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가 운영 중이다. 인도의 보스 인스티튜트(Bose Institute)는 그가 직접 설립한 연구 기관으로, 지금도 식물 생리학과 우주 과학 연구를 진행한다. 방글라데시의 자가디시 찬드라 보스 과학재단도 같은 이름을 잇는다.
2026년 5G 마이크로파 표준 회의에서 그의 60GHz 실험은 “현대 통신의 역사적 출발점”으로 인용됐다. 한 세기 전 식민지 캘커타의 강당에서 시연된 23미터 무선 신호가, 한 세기 뒤 글로벌 5G 표준의 역사적 근거로 다시 호명된 것이다.

묻혀진 발명가의 의미
보스의 이야기는 “누가 먼저였는가”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과학사가 어떻게 쓰이는지, 식민지 시기의 학문 권력이 어떻게 한 사람의 자리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그가 특허를 거부한 신념은 100년 뒤 오픈소스 운동의 정신과 닿아 있다. 그의 식물 생체 신호 연구는 현대 생체 전자공학(bioelectronics)과 식물 행동학의 출발점 중 하나로 다시 평가되고 있다. 그가 사용한 60GHz 마이크로파는 2026년 5G 표준의 핵심 주파수다. 130년 전 한 사람이 시작한 세 갈래의 길이 100년 뒤 모두 살아 있다.
묻혀진 발명가의 의미는 단순한 명예 회복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과학을 어떻게 기억할지의 질문이고, 한 시대가 무엇을 “중심”으로 삼았는지를 다시 묻는 일이다. 보스의 재평가는 결국 “누구의 과학사인가”라는 더 큰 질문을 던진다.

130년의 시간
1894년 캘커타의 한 강당에서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 신호로 23미터 떨어진 종이를 떨어뜨렸다. 그 신호는 그날 그 자리에서 끝났지만, 그가 보낸 진짜 신호는 13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도착하고 있는지 모른다.
과학사는 종종 늦게 도착하는 신호다. 한 시대가 잊은 사람이 다음 시대에 다시 호명되고, 한 시대가 각주로 축소한 발견이 다음 시대에 중심으로 옮겨온다. 보스의 130년은 그 늦은 신호의 한 사례이고, 어쩌면 우리 시대에도 같은 늦은 신호가 어딘가에서 도착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