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힌 이야기들 EXCAVATION №2026

헨리에타 랙스 HeLa 세포 사건 — 동의 없이 70년간 팔린 불멸의 세포

헨리에타 랙스 HeLa 세포 사건 — 동의 없이 70년간 팔린 불멸의 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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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1년 볼티모어, 31살 여인의 병원 방문

1951년 1월, 볼티모어의 흑인 여성 헨리에타 랙스가 존스홉킨스 병원을 찾았다. 비정상적인 출혈이 계속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존스홉킨스는 흑인 환자를 받아주는 몇 안 되는 병원 중 하나였다. 검사 결과는 자궁경부암이었다. 나이는 31살이었다.

헨리에타는 1920년 버지니아 주 로어노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할머니 손에 자랐다. 성인이 되어 볼티모어로 이사한 그녀는 남편 데이와 다섯 아이를 두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녀가 병원을 찾던 날, 자신의 세포가 인류 역사를 바꿀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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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의 없이 채취된 세포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헨리에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방사선 치료 전, 담당 의사 하워드 존스가 그녀의 자궁경부 조직 샘플을 채취했다. 이 샘플 일부는 세포 배양 연구를 하고 있던 조지 가이 박사에게 보내졌다. 헨리에타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당시 미국에는 환자의 세포나 조직을 연구에 사용할 때 반드시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법적 규정이 없었다. 그러나 윤리적으로 옳은 일이냐는 별개의 문제였다. 헨리에타의 세포는 그날부터 그녀의 몸 밖에서 또 다른 생애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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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죽지 않는 세포 — HeLa의 탄생

가이 박사는 오랫동안 인간 세포 배양에 실패해왔다. 대부분의 세포는 실험실 환경에서 며칠 내에 죽었다. 그러나 헨리에타의 세포는 달랐다. 며칠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계속 살아 번식했다.

가이 박사는 이 세포에 헨리에타 랙스의 이름 첫 두 글자를 따 HeLa라는 이름을 붙였다. HeLa 세포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실험실에서 무한히 배양 가능한 인간 세포주가 되었다. 이것은 의학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명적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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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HeLa 세포가 바꾼 인류의 역사

HeLa 세포가 배양 가능해지면서 의학 연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가장 먼저, 조나스 소크 박사는 HeLa 세포를 이용해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했다. 1952년 당시 소아마비는 전 세계에서 수십만 명을 마비시키는 치명적 질환이었다. HeLa 세포 덕분에 바이러스를 대량 배양하고 백신을 테스트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외에도 HeLa 세포는 암 연구, 에이즈 연구, 방사선 영향 연구, 코로나19 백신 개발 등 수많은 의학 분야에서 핵심 도구가 되었다. 이 세포를 이용한 연구로 노벨상이 5개 이상 수여되었다. HeLa 세포는 의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생물학적 도구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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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족이 몰랐던 22년

헨리에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녀의 세포는 전 세계 연구실에서 계속 살아 번식했다. HeLa 세포는 수억 개의 복제본으로 나뉘어 전 세계에 유통되었다. 그러나 헨리에타의 남편 데이와 다섯 아이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22년이 넘도록 가족들은 어머니의 세포가 전 세계 연구실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1973년, 과학자와의 인터뷰에서 실수로 이 사실이 가족에게 전달되었다. 가족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 동안 가족들은 의료비도 내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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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불균형 — 혜택은 누구에게

헨리에타 랙스 사건은 의학 연구에서 이익과 희생의 불균형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드러낸다. HeLa 세포를 이용한 의학계와 제약업계는 수조 원의 이익을 거두었다. 반면 헨리에타의 가족은 의료비도 내기 어려운 생활을 했다.

이 사건은 이후 미국의 의료 연구 윤리와 인체 자원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환자 동의와 인체 자원 소유권에 대한 논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누군가의 세포가 세상을 바꿀 때, 그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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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010년, 세상에 알려진 이야기

헨리에타 랙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10년이었다. 과학 저널리스트 레베카 스클루트가 10년간의 취재를 바탕으로 쓴 책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생명》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전 세계에 헨리에타의 이야기를 알렸다.

2013년에는 유럽 연구진이 또다시 가족의 동의 없이 HeLa 세포의 전체 유전체를 공개했다가 항의를 받고 철회하는 사건이 있었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었다. 헨리에타 랙스 가족과 NIH는 이후 HeLa 세포의 유전체 데이터 접근에 관한 협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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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023년, 70년 만의 법적 인정

2023년, 헨리에타 랙스의 유족들은 주요 제약회사 테르모 피셔 사이언티픽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HeLa 세포를 수십 년간 무단으로 수익 창출에 사용했다는 내용이었다. 소송은 합의로 마무리되었다. 합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것은 헨리에타의 유족들이 처음으로 법적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7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헨리에타 랙스라는 이름, 그리고 그녀가 모르는 사이 치러야 했던 희생이 비로소 법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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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헨리에타의 세포는 오늘도 살아 있다

헨리에타 랙스가 세상을 떠난 지 70년이 넘었다. 그러나 그녀의 세포는 오늘도 전 세계 수천 개의 연구실에서 살아 번식하고 있다. HeLa 세포는 소아마비 백신, 암 연구, 에이즈 연구,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19 백신 개발에도 활용되었다. 그녀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세포는 세상을 바꿨다.

헨리에타 랙스 사건은 지금도 의학 윤리, 인체 자원, 그리고 연구 참여자의 권리에 관한 논의에서 중심 사례로 인용된다. 그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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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알아보기 — 1990년 무어 v. 캘리포니아 대학 판례

헨리에타 랙스 사건과 유사한 법적 논쟁이 1990년 미국 대법원에서도 있었다. 존 무어라는 환자가 자신의 혈액에서 추출한 세포가 의사 몰래 특허 등록되고 수백만 달러의 이익을 창출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어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환자가 자신의 세포에 대한 재산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이후 의료 윤리 분야에서 큰 논란이 되었다. 인체 세포와 조직에 대한 소유권과 동의, 이익 분배에 관한 법적 논쟁은 헨리에타 랙스 사건과 함께 의료 법학의 핵심 사례로 교과서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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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헨리에타 랙스의 세포는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치른 대가는 너무도 가혹했다. 의학의 발전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이루어질 때, 우리는 그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헨리에타 랙스는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다. 헨리에타 포에베 랙스, 1920년 출생, 1951년 사망. 그녀의 세포는 영원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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