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힌 이야기들 EXCAVATION №2026

도로시 본: NASA에서 포트란을 독학해 동료 30명을 살린 흑인 여성 감독

도로시 본: NASA에서 포트란을 독학해 동료 30명을 살린 흑인 여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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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8년 랭글리의 한 도서관

1958년 미국 버지니아주 랭글리 연구소의 한 도서관, 한 흑인 여성이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그녀가 빌리려 한 책은 IBM 7090 컴퓨터의 프로그래밍 언어 포트란 매뉴얼이었다. 당시 그녀의 직업은 “인간 컴퓨터”라 불리는 수학자였고, 그녀의 부서 전체가 곧 새로 들어온 진짜 컴퓨터에 의해 직업을 잃을 위기에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도로시 본이었고, 그녀의 나이는 48세였으며, 그녀가 그날 빌린 매뉴얼을 독학한 후 부서원 전원에게 직접 그것을 가르치게 된다. 그녀는 어떻게 영화 히든 피겨스의 진짜 주역이 되었을까. 그리고 왜 그녀의 이름은 캐서린 존슨의 그림자에 가려진 채 오랫동안 잊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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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43년 NACA의 분리된 사무실

도로시 본은 1910년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4세에 윌버포스 대학교에 입학해 수학을 전공했고, 1929년 18세에 우등으로 졸업했다. 그녀는 약 13년간 고등학교 수학 교사로 일했고, 1943년 2차 세계대전 중 인력 부족으로 항공 자문위원회가 흑인 여성 수학자를 모집하기 시작하자 NACA 랭글리 연구소에 지원했다. NACA는 NASA의 전신이었고, 그녀가 배치된 곳은 “서편 구역 컴퓨팅 팀”이라는 부서였다. 그 부서는 모든 구성원이 흑인 여성으로만 구성되어 있었고, 사무실은 백인 여성 수학자들의 동편 사무실에서 약 800미터 떨어진 별도 건물에 있었다. 화장실도, 식당도 분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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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6년간의 임시 직무대행

1949년 서편 컴퓨팅 팀의 백인 남성 감독관이 사망했다. 부서를 임시로 운영할 사람이 필요했고, 부서 내에서 가장 능력 있고 경험 많은 사람이 도로시 본이었다. 그러나 NACA는 그녀를 정식 감독관으로 임명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약 6년간 “임시 직무대행”이라는 이름으로 부서를 운영했다. 그녀는 정식 감독관 급여를 받지 못한 채 모든 책임만 떠안았다. 1949년부터 1955년까지 그녀는 매년 정식 임명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1955년 마침내 그녀는 NACA 최초의 흑인 여성 감독관으로 정식 임명되었다. 임명까지 6년이 걸린 이유는 단 하나, 그녀가 흑인 여성이라는 사실이었다.

4. 1958년 IBM 7090의 도착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발사 후 미국은 NACA를 NASA로 개편하며 우주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58년 NASA는 랭글리 연구소에 IBM 7090 컴퓨터를 도입했다. 그 컴퓨터 한 대는 약 100명의 인간 컴퓨터가 하는 일을 1초도 안 걸려 처리할 수 있었고, 그것은 곧 도로시 본의 서편 컴퓨팅 팀 전체가 곧 해체될 것임을 의미했다. 다른 부서장들은 IBM 7090에 대해 두려움과 거부감을 표현했지만, 본은 다르게 반응했다. 그녀는 그 기계가 자신과 부서를 대체할 것이라면,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그녀는 도서관에 가서 포트란 매뉴얼을 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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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식탁에서 시작된 6개월의 독학

포트란은 1957년 IBM이 개발한 프로그래밍 언어로, 당시 미국에서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본은 매뉴얼을 집으로 가져가 두 자녀가 잠든 밤마다 식탁에서 독학을 시작했다. 그녀는 후일 동료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책의 모든 페이지를 손으로 베껴 적었습니다. 그래야 머릿속에 들어왔습니다.” 그녀가 포트란을 익히는 데 걸린 시간은 약 6개월이었다. 그 6개월 동안 그녀는 자신의 부서원 약 30명이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직접 가르치는 비공식 점심 수업을 만들었다. 점심시간마다 그녀는 부서원들에게 포트란을 가르쳤고, 부서원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모두 그 수업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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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961년 서편 팀의 자발적 해체

1961년, 도로시 본은 서편 컴퓨팅 팀의 자발적 해체를 결정했다. 그녀의 부서원 전원은 그동안 그녀에게 배운 포트란 실력을 바탕으로 NASA의 새로운 “전자 컴퓨팅 분과”로 전부 재배치되었다. 그것은 NASA 역사상 매우 드문 사례였다. 새 기술이 기존 부서를 대체할 때 보통 부서원의 약 70%가 해고되는 것이 관례였지만, 본의 부서원은 단 한 명도 해고되지 않았다. 본 자신도 새로운 분과로 이동했고, 그녀는 NASA의 첫 흑인 여성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그녀는 후일 한 동료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책임진 사람들의 직업을 지키는 것은 감독관의 첫 번째 임무입니다.” 그녀가 살린 30개의 직업은 NASA 우주 프로그램의 코드를 짠 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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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캐서린 존슨과 메리 잭슨을 키운 부서

본의 서편 컴퓨팅 팀은 영화 히든 피겨스의 다른 두 주인공 캐서린 존슨과 메리 잭슨이 처음 배치된 부서였다. 캐서린 존슨은 1953년 본의 부서에 합류했고, 본은 그녀의 수학적 재능을 즉시 알아본 후 그녀를 비행연구실로 직접 추천했다. 그 추천이 후일 캐서린 존슨이 아폴로 11호의 궤도를 손으로 계산하게 되는 시작이었다. 메리 잭슨도 1951년 본의 부서에 합류했고, 본은 그녀가 백인 전용 대학원 과정에 청원을 내도록 격려했다. 메리 잭슨은 후일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항공우주공학자가 되었다. 영화 히든 피겨스의 진짜 이야기는 두 천재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두 천재 여성을 발견하고 키운 한 감독관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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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971년 은퇴와 침묵의 40년

도로시 본은 1971년 NASA에서 은퇴했다. 그녀는 NASA에서 약 28년을 근무했고, 그동안 자신이 키운 부서원과 후배들의 이름이 NASA 우주 프로그램의 모든 주요 계산서에 적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녀 자신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가 작성한 코드, 그녀가 가르친 학생, 그녀가 살린 직업, 그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의 업적으로 기록되었다. 그녀는 1971년 은퇴 후 한 번도 NASA의 공식 행사에 초대받지 못했고, 한 번도 인터뷰 요청을 받지 못했다. 그녀는 2008년 11월 10일 98세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녀의 가족과 옛 부서원들 가운데 생존한 몇 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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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달에 새겨진 한 여성의 이름

도로시 본의 이름이 다시 불려진 것은 2016년 마고 리 셰털리의 책 히든 피겨스가 출간되면서부터였다. 같은 해 동명의 영화가 개봉되었고, 본의 역할은 배우 옥타비아 스펜서가 연기했다. 그제야 미국 사회는 NASA의 우주 경쟁 뒤에 가려져 있던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2019년 NASA는 워싱턴 DC 본부 건물을 “메리 잭슨 본부”로 명명했고, 같은 해 의회는 본과 그녀의 동료들에게 의회 황금훈장을 추서했다. 2020년 국제천문연맹은 달 뒷면의 한 분화구를 “본 분화구”로 명명했다. 그 분화구의 직경은 약 17킬로미터였고, 인간 컴퓨터로 시작해 NASA 첫 흑인 여성 감독관이 된 한 여성의 이름이, 사후에 달에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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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 감독관이 만든 30개의 미래

본의 일생을 다시 돌아보면, 그녀의 가장 큰 업적은 자신이 직접 작성한 코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키운 능력이었다. 그녀는 1949년 임시 감독관 직책을 6년간 견디며 정식 임명을 기다렸고, 1958년 새로운 기술이 자신의 부서를 위협했을 때 그것을 적이 아니라 다음 단계의 도구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부서원을 희생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6개월간의 독학을 부서원 30명에게 통째로 전달했다. 그녀가 가르친 부서원들은 NASA 우주 프로그램의 코드가 되었고, 그녀가 추천한 캐서린 존슨은 아폴로 11호의 궤도가 되었고, 그녀가 격려한 메리 잭슨은 NASA 첫 흑인 여성 공학자가 되었다. 한 감독관이 만든 30개의 미래가, 한 세대의 우주 역사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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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마치며: 빛 뒤의 더 깊은 손

1910년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난 소녀가, 1943년 NACA의 분리된 서편 사무실에 흑인 여성 수학자로 입사하고, 1955년 NACA 최초의 흑인 여성 감독관이 되고, 1958년 도서관에서 포트란 매뉴얼을 빌려 독학한 후 부서원 30명에게 그것을 가르쳐 모두의 직업을 살렸고, 2008년 98세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도로시 본의 일생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무엇일까. 한 사람의 결단이 30명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일까. 아니면 가장 빛나는 이름들 뒤에는 그 이름들을 만든 더 깊은 손이 있다는 사실일까. 달 뒷면에 새겨진 한 여성의 이름이, 한 세기를 지나 우리에게 가장 단단한 답을 주고 있다. 빛 뒤에는 언제나 그 빛을 만든 더 깊은 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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