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44년 5월, 몬테카시노의 산비탈
1944년 5월, 이탈리아 몬테카시노의 가파른 산비탈에서 한 무리의 폴란드 병사들이 무거운 포탄 상자를 산 위로 운반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한 거대한 갈색곰이 두 발로 걸으며 함께 포탄 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보이텍이라는 이름의 그 곰은 폴란드군 제22 수송중대의 정식 이등병이었고, 군번과 급료까지 받는 진짜 군인이었다. 평범한 곰 한 마리가 어떻게 폴란드 망명 정부군의 정식 군인이 되었을까. 그리고 왜 그의 이야기는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토록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것일까.

2. 1942년 이란 함단의 작은 만남
보이텍과 폴란드군의 만남은 1942년 4월 이란 함단 지방의 한 시골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소련 굴라크 수용소에서 풀려나 영국군 지휘하의 폴란드군에 합류하기 위해 이동 중이던 폴란드 병사들이, 어머니를 잃은 한 시리아 갈색곰 새끼를 발견했다. 한 이란 소년이 그 새끼곰을 자루에 담아 들고 있었고, 병사들은 통조림 몇 개와 폴란드 동전 몇 개로 그 새끼곰을 사들였다. 당시 새끼곰의 몸무게는 약 3킬로그램이었고, 우유 한 잔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어린 상태였다. 병사들은 그를 부대로 데려갔고, 보이텍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폴란드어로 “기쁨의 전사”라는 의미였다.

3. 사람처럼 자란 곰
보이텍은 부대에서 어린아이처럼 자랐다. 병사들은 그에게 우유를 데워주고, 정어리 통조림을 나누어 주고, 보리차를 함께 마셨다. 그는 사람의 행동을 빠르게 배웠다. 보이텍은 다른 곰들과 달리 두 발로 걸으며 병사들과 씨름하고, 군복을 흉내 내며 행진하고, 트럭에 짐을 싣는 작업까지 도왔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보이텍이 맥주를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한 병의 폴란드 맥주를 단숨에 비우는 그를 보고 병사들은 환호했다. 보이텍에게는 담배 한 개비도 종종 주어졌는데, 그는 담배를 손에 들고 흉내 내며 한참 동안 가지고 놀다 마지막에는 그것을 통째로 먹어버렸다.
4. 영국군 수송선이 거절한 이유
1943년, 폴란드군이 이집트에서 이탈리아 전선으로 이동하게 되자 문제가 생겼다. 영국군 수송선의 규칙에 따르면 동물은 절대 승선할 수 없었다. 부대장은 영국군 수송 책임자에게 보이텍의 승선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병사들은 보이텍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 한 부대원이 기발한 제안을 했다. “보이텍을 정식 군인으로 등록하면 됩니다.” 1944년 1월, 보이텍은 폴란드 망명 정부군 제22 수송중대에 정식 이등병으로 등록되었다. 그는 군번, 급료, 식량 배급권을 받았다. 영국군 수송선은 “군인 보이텍”의 승선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5. 100킬로그램의 포탄 상자
1944년 5월 17일, 폴란드군은 연합군의 마지막 몬테카시노 공세에 참여했다. 산악 지대의 가파른 비탈에서 트럭이 통과할 수 없는 마지막 구간은 모든 보급품을 사람이 직접 운반해야 했다. 한 발에 약 45킬로그램의 포탄 상자를 병사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옮기던 그 순간, 보이텍이 자신도 함께 옮기겠다는 듯 한 상자를 두 발로 들어 올렸다. 그는 약 100킬로그램의 포탄 상자를 단독으로 들고 산 위까지 운반했다. 그 후 며칠 동안 보이텍은 수십 차례 포탄 상자를 옮겼고, 단 한 상자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한 동료는 후에 회상했다. “보이텍은 우리가 쉬는 시간에도 포탄을 옮겼습니다. 그는 진짜 군인이었습니다.”

6. 부대 휘장에 새겨진 곰
몬테카시노 전투 후 폴란드 제22 수송중대의 휘장이 변경되었다. 새 휘장에는 보이텍의 모습이 새겨졌다. 두 발로 서서 포탄 상자를 양손으로 들고 있는 곰의 그림이었다. 그 휘장은 지금도 폴란드군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영국 에든버러 시청 광장에는 같은 디자인의 청동상이 서 있다. 한 부대가 자신들이 키운 동물 한 마리를 휘장에 새기는 일은 군 역사에서 극히 드문 사례였다. 보이텍은 단순한 마스코트가 아니라 부대의 진짜 일원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7. 1947년 에든버러 동물원의 그 밤
1945년 종전 후 폴란드는 소련 영향권에 들어갔고, 폴란드 망명 정부군은 영국에 잔류하게 되었다. 보이텍과 그의 부대는 영국 스코틀랜드 베릭셔로 이주했다. 그러나 보이텍이 너무 크게 자라 부대에서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게 되자, 1947년 11월 보이텍은 에든버러 동물원에 기증되었다. 이별의 날 폴란드 병사 약 30명이 보이텍을 동물원까지 동행했다. 그들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폴란드어로 군가를 불렀고, 보이텍은 우리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그들을 한 명씩 안아주었다. 그가 우리에 들어간 후, 병사들은 모두 군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했다.

8. 폴란드어에만 반응한 22년
보이텍은 에든버러 동물원에서 22년을 살았다. 동물원 사육사들은 그가 사람과의 접촉을 갈망한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그를 보러 온 폴란드 사람이 폴란드어로 말을 걸면 보이텍은 즉시 두 발로 일어서서 우리 가까이 다가왔다. 영어로 말하면 반응하지 않았다. 옛 폴란드군 동료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했고, 보이텍은 그들을 모두 기억했다. 그는 우리 안에서 담배를 던져주는 사람을 보면 손을 내밀어 받았다. 그러나 사육사들은 곧 그것을 금지했다. 그는 동물원의 가장 인기 있는 동물이었고, 매년 약 50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모았다. 보이텍은 1963년 12월 사망했다. 향년 약 21세였다.

9. 세 개의 청동상
보이텍을 기리는 청동상은 현재 세계에 세 곳이 있다. 폴란드 크라쿠프의 요르단 공원, 영국 에든버러 시청 광장, 그리고 스코틀랜드 더프타운이다. 모두 보이텍과 그를 사랑한 폴란드 병사가 함께 서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매년 폴란드 군대의 베테랑들과 그들의 가족이 이 청동상들 앞에서 기념식을 연다. 보이텍의 이야기는 단순한 동물 이야기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절망의 한복판에서 인간이 한 동물에게 보여준 따뜻함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보이텍이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이유다.

10. 한 곰이 남긴 인간성
보이텍의 일생을 다시 돌아보면,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거리가 아니라 전쟁의 절망 속에서 인간이 인간성을 잃지 않은 한 증거였다. 1942년 소련 굴라크에서 풀려난 폴란드 병사들은 자신들의 가족과 친구들을 잃은 채 사막을 떠돌고 있었다. 그들은 어머니를 잃은 새끼곰을 보고 자신들의 잃어버린 가족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새끼곰을 사들였고, 키웠고, 군적부에 정식으로 등록했고, 함께 산을 올랐고, 마지막 순간에 거수경례로 작별했다. 그것은 한 부대가 한 동물에게 보여준 가장 인간다운 행동이었다. 보이텍이 사랑받은 이유는 그가 곰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폴란드 병사들이 그를 통해 자신들의 인간성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1. 마치며: 80년이 지나도 살아 있는 이름
1942년 이란의 산골에서 어머니를 잃은 새끼곰 한 마리가, 1944년 이탈리아 몬테카시노에서 폴란드군의 정식 이등병이 되어 포탄을 옮겼고, 1963년 에든버러 동물원에서 21세로 생을 마쳤다. 한 동물의 일생이 한 부대의 역사를 바꾸고, 한 국가의 기억이 되고, 세 개의 청동상으로 남았다. 보이텍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무엇일까. 전쟁의 절망 속에서 한 새끼곰을 살린 폴란드 병사들의 따뜻함일까. 아니면 인간이 아닌 동물도 진정한 동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일까. 보이텍의 청동상 앞에 매년 헌화되는 폴란드 베테랑들의 꽃다발이 그 답을 대신하고 있다. 한 곰의 일생이 80년이 지나도 살아 있는 이름이 되는 이유는, 그가 사랑받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