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시계, 그러나 40년간 빼앗긴 상금
단 하나의 시계가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만, 세상은 그것을 만든 남자에게 40년 동안 정당한 상금을 주지 않았다. 그는 대학은커녕 제대로 된 학교조차 다니지 못한 시골의 가난한 목수였다. 그가 만든 시계는 배가 망망대해 어디에 떠 있는지를 정확히 알려주는, 당대 누구도 풀지 못한 기적이었다.
그런데 별을 연구하던 당대 최고의 학자들은 그 공로를 인정하는 대신, 끝없이 조건을 바꾸며 그를 밀어냈다. 그의 이름은 존 해리슨이다. 이 글은 세상을 구하고도 학계의 자존심에 가로막혀 오래도록 잊혔던 한 천재의 묻혀진 이야기다.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만 켜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불과 300여 년 전만 해도 바다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위치를 아는 것은 인류의 능력을 넘어선 일이었다.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사람이 대학 교육 한 번 받지 못한 목수였다는 사실은, 지금 들어도 쉽게 믿기지 않는다.
바다라는 거대한 미로
18세기까지 바다는 인류에게 거대한 미로와 같았다. 선원들은 남북 방향, 즉 위도는 태양의 높이를 재어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동서 방향인 경도였다.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자신이 얼마나 동쪽이나 서쪽에 있는지를 알아낼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 결과 배들은 늘 자신의 위치를 어림짐작에 맡긴 채 항해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계산이 어긋나도 배는 엉뚱한 곳에서 암초에 부딪히거나 길을 잃었다. 수많은 선원이 육지를 눈앞에 두고도 어둠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경도를 알아내는 일은 당시 인류에게 가장 절박하면서도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2000명을 삼킨 참사와 국가의 상금
경도 문제의 참혹한 대가는 하나의 거대한 사고로 드러났다. 1707년, 영국의 대규모 함대가 짙은 안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완전히 잘못 계산했다. 함대는 실리 제도의 암초에 그대로 부딪혔고, 약 2000명에 이르는 선원이 하룻밤 사이에 목숨을 잃었다.
이 충격적인 참사는 나라 전체를 뒤흔들었다. 마침내 1714년, 영국 의회는 특단의 조치를 내놓았다. 경도를 정확히 알아내는 방법을 찾는 사람에게 2만 파운드라는 어마어마한 상금을 내건 것이다. 오늘날 가치로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거액이었고, 온 유럽의 천재들이 이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에 도전장을 던졌다.
시간이 곧 위치였다
이 거대한 상금에 도전한 사람들 중에는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잉글랜드 시골 마을의 목수 존 해리슨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톱니바퀴와 태엽의 세계에 매료되어 독학으로 나무를 깎아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정밀함은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해리슨은 경도 문제의 열쇠가 결국 시간에 있다고 확신했다. 정확한 시계만 있다면 출발한 항구의 시간과 지금 있는 곳의 시간을 비교해 경도를 계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끝없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오차 없이 작동하는 시계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때까지 그런 시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기술보다 높은 벽, 학계의 편견
그러나 해리슨 앞에는 기술보다 더 높은 벽이 있었다. 바로 당대 학계의 뿌리 깊은 편견이었다. 상금의 심사를 맡은 이들은 대부분 별과 달을 연구하는 천문학자였고, 그들은 오직 하늘을 읽는 것만이 진정한 과학이라 믿었다.
그들에게 시골 목수의 기계 시계는 하찮은 장난감처럼 보였다. 학계는 별의 각도를 재어 계산하는 천문학적 방법을 선호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복잡한 계산이 필요했고, 구름이 조금만 껴도 무용지물이 되었으며, 위치 하나를 구하는 데 몇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반면 해리슨의 시계는 그저 들여다보기만 하면 즉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누가 보아도 시계 쪽이 더 간단하고 정확했지만, 심사위원회를 장악한 천문학자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바다를 이기는 시계
편견에 맞서 해리슨은 오직 실력으로 답했다. 그는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시간이 어긋나지 않는 시계를 만들기 위해 여러 난제를 하나씩 정복했다. 파도의 흔들림 속에서도 태엽이 일정하게 풀리도록 정교한 장치를 고안했고, 온도가 변해도 금속이 늘거나 줄지 않도록 성질이 다른 두 금속을 짝지어 오차를 상쇄시켰다.
또한 기름칠 없이도 마찰이 거의 없는 부품을 만들어 거친 바다 위에서 시계가 멈추지 않게 했다. 이 모든 혁신은 그전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이 기술들은 훗날 현대 정밀 기계 공학의 밑거름이 되었다. 온도 보정을 위해 두 금속을 결합한 그의 아이디어는 지금도 다양한 계측 장비에 응용되고 있다. 수십 년에 걸친 그의 손끝에서, 마침내 바다를 이기는 시계가 태어나고 있었다.
몇 초의 오차, 그러나 미뤄진 대가
해리슨의 도전은 평생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1735년 첫 번째 바다 시계를 완성한 그는 멈추지 않고 더 작고 정확한 시계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1759년, 마침내 커다란 회중시계 크기의 걸작을 완성했다. 이 작은 시계는 1761년 자메이카까지 가는 긴 항해에서 시험대에 올랐다.
몇 달에 걸친 항해가 끝났을 때, 이 시계가 남긴 오차는 겨우 몇 초에 불과했다. 상금을 받기에 차고 넘치는 성과였다. 그런데 심사위원회는 상금을 주는 대신,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또 다른 시험을 요구했다. 그렇게 그의 정당한 대가는 계속해서 뒤로 미뤄졌다.
국왕의 분노와 뒤늦은 정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해리슨은 어느덧 백발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반평생을 바쳐 문제를 풀고도 정당한 상금을 받지 못한 그의 억울함이 극에 달했을 무렵, 뜻밖의 인물이 그의 편에 섰다. 바로 국왕 조지 3세였다.
해리슨의 시계를 직접 확인한 왕은 크게 분노하며 반드시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선언했다. 왕이 직접 나서자 굳게 닫혀 있던 상황은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1773년, 80세에 가까운 해리슨은 마침내 남은 대가의 대부분을 받아냈다. 첫 도전으로부터 무려 4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뒤였다.
잊혀진 장인이 남긴 것
존 해리슨은 화려한 학위도, 높은 신분도 없는 평범한 목수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반세기에 걸친 집념 하나로 인류의 오랜 숙제를 끝내 풀어냈다. 그를 아는 이들은 그가 지독하리만치 완벽을 추구한 장인이었다고 전한다. 바로 그 고집이 학계의 냉대 속에서도 그를 무너지지 않게 했다.
정당한 대가를 받아낸 지 겨우 3년 뒤인 1776년, 해리슨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평생을 바쳐 세상을 구한 사람의 마지막은 조금도 요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만든 시계는 그 뒤로 수많은 배를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오늘 우리는 손안의 작은 기계 하나로 지구 어디에 있는지 순식간에 알아낸다. 그 편리함의 뿌리에는 흔들리는 배 위에서 시간을 붙잡으려 평생을 바친 한 목수가 있다. 재능은 신분이나 학위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집념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존 해리슨의 삶은 지금도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