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무실의 그 기계, 시작은 거절이었다
지금 전 세계 어느 사무실을 가도 복사기 한 대쯤은 놓여 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깨끗한 사본이 순식간에 쏟아지는 이 기계를,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이 흔한 기계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무려 20개가 넘는 거대 기업이 그것을 쓸모없다며 걷어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IBM도, 제너럴 일렉트릭도, 사진의 명가 코닥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 발명을 홀로 지켜낸 사람은, 손가락이 아파 펜조차 쥐기 힘들었던 무명의 사무원 체스터 칼슨이었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부를 손에 쥐었을 때 보여준 선택은, 그의 발명만큼이나 놀라웠다.
펜을 쥘 수 없는 손
1930년대, 뉴욕의 한 특허 사무소에서 젊은 사무원 체스터 칼슨은 매일 같은 고통에 시달렸다. 그의 일은 복잡한 서류를 손으로 일일이 옮겨 적고, 똑같은 사본을 몇 번이고 다시 베끼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의 손이었다. 관절염을 앓던 그의 손가락은 조금만 글씨를 써도 마디마디가 불에 타는 듯 아팠다. 밤이면 퉁퉁 부은 손을 감싸 쥔 채, 그는 늘 같은 생각을 되풀이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똑같은 사본이 저절로 나오는 기계는 정말 만들 수 없는 것일까. 남들에게는 사소한 불편이, 그에게는 하루하루를 갉아먹는 절박한 문제였다. 바로 그 절박함이 한 남자를 발명가의 길로 밀어 넣고 있었다.
아무도 풀지 못한 숙제
당시에도 문서를 복제하는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먹지를 대고 눌러 쓰거나, 사진을 찍듯 복사하는 값비싼 장비가 있긴 했다. 하지만 먹지는 몇 장만 지나면 글씨가 뭉개졌고, 사진식 복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큰 회사가 아니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방식이었다. 수많은 사무실이 여전히 사람의 손과 인내에 기대어 서류를 베끼고 있었다. 마른 상태에서, 빠르게, 값싸게 복제하는 방법. 그것이야말로 그 시대 누구도 풀지 못한 숙제였다. 칼슨은 바로 그 불가능에 정면으로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셋방에서 일어난 기적
1938년 10월 22일, 뉴욕 아스토리아의 작은 셋방. 칼슨은 낡은 조리대를 실험대 삼아 홀로 서 있었다. 그는 정전기로 가루가 달라붙는 성질에 주목했다. 유황을 입힌 금속판을 문질러 정전기를 일으킨 뒤, 그 위에 짧은 표시를 비추고 고운 가루를 살살 뿌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가루가 정확히 표시된 자리에만 달라붙었고, 이것을 종이에 옮기자 똑같은 상이 그대로 찍혀 나왔다. 세계 최초의 건식 복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사람의 손도, 잉크도, 값비싼 화학약품도 전혀 필요 없었다. 오늘날 복사기의 심장이 된 이 원리를, 그는 부엌에서 홀로 완성한 것이다.
열정적인 무관심
발명을 손에 쥔 칼슨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는 이 기술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 확신하며 유명한 기업들을 하나씩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을 그는 훗날 “나는 열정적인 무관심과 마주했다”고 표현했다. 아무도 마른 복사 따위에 돈을 낼 리 없다는 냉담한 반응이었다. 발명가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반대가 아니라, 이토록 철저한 무관심이었다. 그는 문전박대를 당할 때마다 조금씩 지쳐갔다. 그럼에도 자신의 발명이 언젠가 빛을 볼 것이라는 믿음만은 놓지 않았다.
20곳이 넘는 거절
칼슨이 발명을 들고 찾아간 회사들의 명단은 화려했다. 당대 최고의 기술 기업으로 꼽히던 IBM이 그를 돌려보냈다. 거대 전자 회사인 제너럴 일렉트릭도, 사진 기술의 자존심이던 코닥도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무려 20곳이 넘는 기업이 그의 발명을 거절했다. 이유는 한결같았다. 이미 먹지가 있는데 누가 굳이 복잡한 기계를 사겠느냐는 것이었다. 세상은 제 손안에 굴러 들어온 황금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 사이 칼슨의 통장은 비어갔고, 그의 발명은 여전히 아무도 원치 않는 물건으로 남아 있었다.
장난감이 필수품이 되기까지
당시 기업들의 눈에 칼슨의 발명은 돈이 되지 않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굳이 비싼 기계를 들여놓을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판단은 머지않아 완전히 뒤집혔다. 1959년, 마침내 첫 사무용 복사기가 세상에 나오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버튼 한 번에 깨끗한 사본이 쏟아지는 그 기계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오늘날 복사기는 전 세계 사무실의 필수품이 되었고, 그 회사의 이름은 아예 복사한다는 뜻의 동사로 쓰일 만큼 유명해졌다. 쓸모없다며 20곳에서 쫓겨났던 발명이, 세상에서 가장 흔한 기계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21년의 기다림
칼슨의 발명이 세상에 자리 잡기까지는 길고도 고단한 시간이 걸렸다. 1938년 그는 작은 셋방에서 세계 최초의 건식 복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뒤로 수년 동안 그의 발명은 거절만 당했다. 1944년이 되어서야 한 연구소가 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뒤이어 1947년에는 할로이드라는 작은 회사가 이 기술에 미래를 걸었다. 그리고 1959년, 마침내 완성된 복사기가 세상에 나와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첫 성공에서 세상의 인정까지, 무려 21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였다.
닫힌 문 앞에 선 남자
오랜 거절의 세월 동안, 칼슨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그의 지친 얼굴을 오래 기억했다. 훗날 그는 그 시절을 돌아보며 “수없이 문을 두드렸지만, 매번 닫힌 문 앞에 서 있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셀 수 없이 많았다고도 고백했다. 그러나 자신의 발명이 사람들의 수고를 덜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에게 발명은 돈벌이가 아니라, 자신처럼 손이 아픈 이들을 위한 약속이었다.
조용히 되돌려준 부
체스터 칼슨의 삶을 숫자로 들여다보면 그 반전은 더욱 놀랍다. 그의 발명을 거절한 기업은 20곳이 넘었고, 첫 성공에서 인정받기까지는 21년이 걸렸다. 복사기가 성공하자 그의 손에는 상상도 못 할 부가 쏟아졌다. 그런데 그는 그 재산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약 1억 5천만 달러를 조용히 사회에 나눠주었다. 그것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대부분을 익명으로 기부했다. 가난 속에서 발명을 지켜낸 그는, 정작 부를 쥐자 그것을 움켜쥐지 않았다.
가장 흔한 기계 속 가장 드문 마음
체스터 칼슨은 1906년 미국의 가난한 이발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가 모두 병으로 몸져눕자 소년은 일찍부터 생계를 떠안아야 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물리학을 배웠다. 가난과 병간호로 얼룩진 어린 시절은 그에게 어떤 고통도 견디는 끈기와, 어려운 이들을 헤아리는 따뜻한 마음을 남겼다. 우리는 매일 무심코 복사기 버튼을 누른다. 그 흔한 기계 뒤에 20번의 거절을 견디고, 얻은 부마저 이름 없이 되돌려준 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기억할 때다.